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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갖춘 강팀일수록 무승부가 적다떠들어볼만한 얘기/소소한 이야기 2007. 5. 2. 01:02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영웅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는 "골 없는 축구는 태양 없는 정오와 같다"고 말했다.
빅4로 일컬어지는 맨유, 첼시, 아스널, 리버풀 등 4개팀의 무승부 비중은 17%밖에 되지 않았다.
특히 0-0무승부는 최악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무승부가 맥빠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유로 2000 네덜란드-이탈리아의 준결승전은 0-0으로 막을 내렸지만 영국 축구전문지 포포투가 선정한 최고의 0-0승부로 뽑힐만큼 박진감이 넘쳤다.
지난 4월 22일 스틸야드(포항 홈구장)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 FC 서울전도 비록 0-0으로 마쳤지만 흥미진진했다. 축구에서 무승부란 나름의 재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무승부가 빈번하면 흥미를 반감시킨다. 특히나 명확한 승부에 목을 매는 한국 축구팬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승부차기라도 해서 매 경기 승부를 가려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이유에서 기원한다.
한 시즌에 한 팀이 거둔 성적 중 무승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거나 전체 리그에서 무승부가 많다는 것은 철학의 빈곤함을 뜻한다. 한 골에 급급한 승부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며 선제골을 지키기 위해 수비를 펼치다 잘되면 승리요, 안되면 무승부라는 방어적인 축구가 주를 이룬다는 방증이다.
K리그를 살펴보면 지나치게 무승부가 많다. 답답하다. 지난해 K리그를 따져보자. 정규리그 186경기(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 포함) 중 무승부는 77경기로 무려 41.4%에 이른다.
올시즌 정규리그 56경기에서도 34%인 19차례나 무승부였다. 지난해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승부가 많다. 이래서야 팬들을 감동시켜 또다시 축구장을 찾게 하는 기초적인 마케팅 전략이 가능할까?
프리미어리그를 살펴보자. 지난 시즌 380경기 중 무승부의 비중은 20.3%(77경기)에 그쳤다. K리그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수치다. 특히나 빅4로 일컬어지는 맨유, 첼시, 아스널, 리버풀 등 4개팀의 무승부 비중은 17%밖에 되지 않았다.
알렉스 퍼거슨 "끝까지 싸워 전사할 지언정 끝내 공격하는 이것이 맨유의 본연이다" 지난 시즌 우승팀 첼시는 38경기 중 단 4무승부(10.5%)에 그쳤다. 영국 언론에서는 올시즌 프리미어리그가 무승부가 지나치게 늘었다고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하지만 322경기 동안 27.3%(88무승부)로 40%를 육박하는 K리그보다는 훨씬 적은 수치다.
1위를 거의 확정지은 맨유는 4무승부밖에 되지 않는 등 강팀들의 무승부 숫자가 중하위권팀들에 비해 적다는 것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다.
무승부가 적은 것은 단지 프리미어리그가 수준이 높기 때문일까?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몇몇 K리그 지도자들은 '프리미어리그는 최고의 공격수들을 갖추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프리미어리그는 최고의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최고의 수비수들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고 반문하고 싶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요,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마지막 사투는 선수들의 능력이 아닌 팀과 리그의 철학에서 기인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끝끝내 상대를 제압해 완벽한 승리를 쟁취하며, 한 골에 만족하지 않는 공격 본능으로 90분을 채워내는 것.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털어놓는 맨유의 본연(nature)이다.그는 지난 2003년 4월 레알 마드리드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홈경기서 4-3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원정 1차전 1-3패배를 극복하지 못하고 탈락한 후 "끝까지 싸워 전사할 지언정 끝내 공격하는 이것이 맨유의 본연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맨유를 비롯한 세계적인 명문클럽들은 저마다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 바르셀로나와 첼시는 같은 4-3-3시스템을 구사하면서도 다르다. 지극히 공격적인 전술로 활용하는 바르셀로나와 안정된 수비후 역습으로 쐐기를 박는 첼시의 전술은 여러 축구전문지에서 흥미롭게 분석해놓았다.
첼시를 비롯한 AC 밀란 등 수비가 강한 팀들이라고 할지라도 득점이 적은 게 아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득점하며 실점을 최소화한다는 게 이들의 팀컬러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공격축구란 90분 내내 상대 골문으로 향하려는 본능이 가득해 시종 팬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원하는 것이다.
다시 K리그로 돌아와보자. 이른바 빅4로 일컫는 팀들의 경기에서도 무승부가 속출한다. 무승부여도 좋다고 치자. 다만 후반 중반이면 이미 승부를 종결된듯 맥이 풀려버리는 그런 경기는 싫다. 비록 승부가 이미 결정됐다고 해도 팽팽한 경기를 원한다.
박빙의 승부의 순간 그대로 경기를 마감지으려는 악행은 없기를 바란다. 끝까지 싸워 정당하게 승점 3점을 얻어내려는 축구의 본능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말로는 '공격축구 공격축구'를 외친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공격축구란 골이 많이 터지는 승부만은 아니다. 90분 내내 상대 골문으로 향하려는 본능이 가득해 시종 팬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원하는 것이다.
K리그 지도자분들! 강팀과 약팀을 떠나 자신의 홈에서는 화끈하게 맞붙는 도전의식을 기대해보겠습니다. 반대 공간이 비었는 데도 수비수들을 미드필드에도 가담시키지 않는 소심한 축구는 지양해주십시요.
정작 K리그를 살리는 길은 최고의 경기내용이라는 점은 지도자 여러분 스스로 가슴 깊이 새기셔야 합니다. 철학의 깊이와 내용, 전통의 무게감이 유럽과 다르다 해도 승패를 떠나 맥없는 승부를 좀체 용납하지 않는 수준높은 팬들이 있는 한 승리에 급급한 나머지 맥빠진 무승부로 일관하는 지도자들이나 선수들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승부란 끝까지 노력을 다하는 경기가 아닐까?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