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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원고 - 트래비스 홀랜드에서 이삭 바벨을 느낄수 있다.
    서평_북스타일+영화 2009. 7. 19. 23:14

    스탈린 치하 러시아의 삶에 관한 이 소설, <사라진 원고>의 태도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있다. 특히 이 소설은 기록된 글의 지속성을 비롯한 전제정치에 저항하는 것으로서의 기억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 러시아 문학의 이면,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고 써내려간 작가의 이상적인 탐구정신이 잘 깃들여진 문학작품이다. 그만한 작품의 특성을 트래비스 홀랜드가 풀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발휘하는 작은 용기가 역사의 잔혹한 진행을 뒤엎을 수 있을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해주게 하는 현대 시대상과 잘 맞물리는 역사적, 시대적, 문학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이미 던진 질문 속에서 이 소설을 좀더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에 따른 또 한번의 질문을 던져본다.

     

    <적군기병대>의 작가로 유명한 이삭 바벨은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 구속되었다가 묘연해진 행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작가로 풀이되고 있다. 바벨는 간첩과 트로츠키 비밀활동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그가 쓴 모든 문서들은 압수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1940 1월 총살된 그는 1954년 소련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복권되게 되는데 그 이후의 역사적 해석은 독자와 현재의 러시아 문학 애호가들에게 달려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너무나 생생하고 감성적인 묘사와, 이를 통한 심리묘사이다. 그것이 인물 묘사이던 배경 묘사이던, 작가는 그 특징을 너무나 세세하게 잡아내고, 또 독특하면서도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또한 이 묘사들은 등장 인물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첫 문단에서는 주인공이 제 6단장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자홍빛 승마바지와 삐뚜름히 쓴 진홍빛 군모, 그리고 가슴을 메우다시피 한 훈장으로 방안을 쩍 갈라놓았다. 마치 군기가 하늘을 가른 듯한 느낌이었다. 최고급 향수 냄새와 향긋한 비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장화를 어깨까지 신은 듯한 처녀 같은 미끈한 두 다리, 윤이 나게 번쩍이는 장화.


    이삭 바벨 1926년 출간작품, 적군기병대의 문학적 필체를 근거하여, 사라진 원고의 홀랜드와의

       문체 비교 “매우 유사하며, 끈끈하고 묵직하다”

     

    하지만 트래비스 홀랜드는 `그 사라진 원고들이 만약 누군가에 의해 구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역사 속에서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복원해내려 한다. 아니 해낸다. 결국 <사라진 원고> 1939 5 16일 체포되어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작가 이삭 바벨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셈이다. 이에 헌정된 작품인 만큼의 노력을 문학적, 아니 적군기병대와 유사한 문체로 끈적끈적하고 사실과 허구의 인물 파벨과의 대조를 통해서 풀어가려 하는 것이다. 홀랜드는 스탈린이 자행한 대숙청 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삼고, 여기에 파벨이라는 한 남자의 예기치 못한 결단이 가져오는 결과와 그 본질을 이야기 한다. 결국 작가가 허구적으로 창조해낸 파벨이란 인물은 사실적인 인물 바벨과 직접 대면한 뒤 크게 동요하게 되고, 이 존경하는 작가의 마지막 작품들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보존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는 일련의 스토리로 조금은 루즈(Loose)하고, 멜로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풀이한다. 결국 이를 결행하는 동기가 된것이다.


    이삭 바벨 (Isaac Babel) / 소설가
    출생 1894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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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을 통해 파벨이 새롭게 눈을 뜨다

     

    키로프 아카데미의 전직 문학교사였던 주인공 `파벨’, 무고한 동료교사를 모함하는 사건에 연루되어 학교에서 쫓겨난 뒤 루뱐카 교도소의 `문서관리인으로 일하게 된다. 모스크바에 위치에 스탈린에게 반기를 들거나 자유 사상이 조금이라도 깃들어 있는 글을 쓰거나 생각을 비친 지식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던 루뱐카 교도소에서 일하던 파벨은 어느 날 이삭 바벨이라는 작가와 인터뷰 하게 되고 이름 높은 문인치고는 너무나 형편없는 그의 처지를 동정하기에 이른다.

     

    바벨은 군더거기 없는 가장 간결한 언어로 강철같이 단단한 글을 쓰고자 했다. 그가 모범으로 삼았던 작가는 짧은 형식의 대가였던 키플링과 모파상이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바벨이 진솔한 전쟁 문학의 전범을 세우는 데 있어서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고 칭찬했다.

     

    여기서 이 `동정은 즉각 소각장으로 향해야 하는 바벨의 원고 중 일부를 숨기게 되는 무척 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당연히 사람을 화려하게 피었다가도 금세 시들시들 해버리는 꽃에 견주는 것 자체가 가치가 없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사람이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사상의 차이 때문에 사람이 타인의 생명을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시대가 있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무시무시한 전쟁이 온 유럽을 휩쓸고 다녔던 그 시대도 그랬다. 스탈린 취하에서 소련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마음껏.. 아니 한마디로도 편히 내비칠 수 없었고 독재자를 빗댄 농담조차도 징역살이나 심하면 총살의 타깃이 되던 시대였다.

     

    바벨의 파일이 보였다. 상자 하나에 녹색 서류철이 27개였다. 파벨은 그 육중한 마분지 상자를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놓았다. 맨 위쪽 서류철에는 바벨이 서명하지 않은 미완성 단편이 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는 철망 안의 백열전구 아래서 무릎을 꿇은 채로 그 단편을 다 읽어버렸다. 잠시 후 그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왔다. 파벨은 자신이 바벨의 단편을 손에 쥐고 있음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음 사태는 명약관화했다. 그 이야기는 분량이 11쪽에 불과했다. 접어서 허리띠 아래 쑤셔 넣고, 등의 허리 부분을 쓸어주기만 하면 됐다. 페이지 86

     

    <사라진 원고>는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잿빛 풍경을 아우르고 있고 그 풍경보다 더 우울하고 불안한 상황들에 내던져진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독자 스스로가 `스탈린 치하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스탈린 시대의 악랄함과 공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동경


    결국에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찾지 못한 민중의 답답하고 호소할 곳 없는 심정을 보살피고 보듬어 준 작가의 `비참한 행색이 기폭제가 되어 동료와 친구조차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던 파벨, 자신의 삶과 과거와 미래마저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억압적인 시대에 반대해서 뭔가 큰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엔 독재의 무게와 감시의 그늘은 너무나 크고 무겁다. 그리고 파벨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의 사정도 그를 결코 자유로운 영혼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


    <출처: Google 이미지>


    갑작스러운 열차 사고도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아내 엘리냐에 대한 기억, 갑작스러운 기억 상실 증세를 보이며 나날이 쇠약 해져가는 어머니의 존재, 그리고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이의 위기들이 모두 그렇게 `종말로 향하고 있는 듯한 세상과 비극으로 치닫고 가는 자신의 삶 사이에서 파벨의 고민을 단순한 그의 고민이 아닌 독자의 고뇌로까지 이어져온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마침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하여 독자에게 지루한 압박이 피부 깊숙이 스며드는 문체로 남아돌게 된다.

     

    <사라진 원고>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비극에 빠져 희박한 공기 속으로 빠져드는 인간의 삶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 내가 그들을 보는 시선이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결국엔 동정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등, 내가 그 상황이라면 파벨과 같은 용기를 뿜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이와 같은 시대상이 모든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한획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라진 원고는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 시대의 고민을 함께 하도록 만들며 그 비극을 결코 잊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었다.

     

    1934년부터 본격화된 `스탈린 시대는 겉으로는 평온했으되, 물밑으로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 잡혀가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스탈린 시대의 한 농담은 당대의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출처: Google 이미지>


    한 정신병원에 대한 공산당의 검열 현장. 1주일 전부터 때 빼고 광내느라 고생했던 환자 200여 명이 도열한 채 일사 분란하게 외친다.

     

    살림살이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인생이 점점 더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침울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는 사람이 당 간부의 눈에 거슬린다. 간부는 묻는다.

     

    왜 구호를 복창하지 않는 거지?”

     

    그 남자는 말한다.

     

    저는 여기 직원이거든요. 저는 정신병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파벨과 절친한 관계인 세미온이 나누는 대화에도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회의와 절망이 묻어난다.

     

    암울한 세계,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시대, 그리고 단지 목숨만을 부지하기 위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작가는 파벨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서 희망의 작은 씨앗을 발견한다.

     

    제가 선생님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파벨이 말했다. “더 많이 빼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페이지 374

     

    거대한 흐름 속에 존재하는 나약할 뿐인 인간에 대한 자화상.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파벨의 자리에 설 수 있고, 또 파벨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과연 우리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사라진 원고>를 읽으면서 '트래비스 홀랜드'의 작품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그리고 공산주의의 현실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망설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무심코 일정한 기간을 두고 보기엔 너무나도 어렵고 딱딱했던 책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네요.


    *<사라진 원고>를 읽게 된다면, 책 내에서 이야기 전개의 주인공인 '이삭 바벨'에 대한 배경지식을 철저히 습득후에 독서 절차를 밟는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본 리뷰에는 필자의 리뷰를 포함하여 타 서평필진 및 리뷰어들의 일부 내용을 토대로 서평이 작성되었음을 적어봅니다.




    사라진 원고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트래비스 홀랜드 (난장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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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서평 전문 팀블로그, "북스타일(Bookstyle)"에 공동 발행 됩니다.





    북스타일, 새우깡소년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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